※若有一個人.生年忌在官祿,大限命宮自化忌,代表此人會在此大限辭職。
만일 한 개인이 있어서 생년기가 관록에 있고 대한 명궁이 자화기이면 이 사람은 이 대한에서 회사를 그만둠을 대표한다.
※以此例如果此答案是當真?它不得不就沒工作,請問,個人的意願力,
抵得過這個向心力與離心力的變化嗎?
이 예에서 만일 이 답안이 진짜 맞았다면? 그는 부득불 직업이 없어지는데, 한번 물어보자면, 개인의 뜻하여 바라는 힘으로, 이 향심력과 이심력의 변화에 대항해 나갈 수 있는가?
如果當真有「業力」的存在?憑你一人可擋大自然嗎?真正的「業力」,
在於宇宙大自然運轉中的平衡力,而人類都屈服在它的「力道」運轉中,
形成生命的軌跡。人類的意志力再大,也抵不過這個「業力」。
(斗數創用此名詞.暗示業力的存在於自然中)
만일 참으로 「업력」의 존재가 있다면? 당신 혼자 힘으로 대자연을 막을 수 있는가? 진정한 「업력」은, 우주에 있어서 대자연을 운전 중인 평형력에 있고 인류는 모두 그가 하는 「역도力道」 운전에 굴복해서 생명의 궤적을 형성한다. 인류의 의지력이 더 커지더라도, 이러한 「업력」에 저항하지는 못한다.
(두수에서 이 명사를 창작하여 씀은 업력이 자연 중에 존재함을 암시한다).
每一個偉大的願行人,人人都可以效法。而效法偉人的心念,是值得堅持的。當每一個人執意做任何一件事,都會遇到或多或少的阻礙。(包括人.事.物)。有阻礙就有煩惱,若想減少無謂的煩惱,必須深入---「因緣法」。觀察因緣與後果。---「因緣不具」,「後果不良,最好就能放棄其意念的執著,否則只有自討苦吃,自討沒趣。若自覺該事是有意義的重大。(良性)非做不可,較積極的作法,就是運用智慧,慈悲,促使因緣早日成熟。
매 일개 위대한 원행인願行人은 사람마다 모두 본받음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위인의 심념을 본받는 것은 견지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해당 매 일개인이 가진 의지로써 어떤 한 건의 일을 하면 모두 많거나 적거나 간에 장애를 만난다(인. 사. 물을 포괄). 장애가 있으면 번뇌가 있고 만일 뭐라 할 수 없는 번뇌를 감소하려면 반드시 깊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인연법因緣法」이다. 인연과 후과後果를 관찰해서, 「인연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후과가 불량하면」 가장 좋은 것은, 그 의념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저 사서 고생하고 스스로 망신을 자초하는 것이다. 만일 해당 일이 중대하게 의의가 있다고 자각해서 (좋은 성질 良性)이면 하지 않을 수 없고, 좀 더 적극적인 행동 방법으로 지혜, 자비를 운용하여 인연이 빠른 날에 성숙하게 한다.
◎法寶壇經法傳.衣第一˙<指六祖>˙五祖送六祖至九江驛邊,有船一隻,令六祖上船,五祖把艣自搖。六祖曰:「請和尚坐,弟子當搖艣」。五祖曰:「合是吾渡汝」。六祖曰:「迷時師度,悟了自度」。度名雖一,用處不同。慧能蒙師付法,只合自性自度。五祖曰:「如是如是」!以後佛法,由汝大行。
법보단경 법전에서 첫 번째 〈육조를 가리킴〉에 따라 오조五祖가 육조六祖를 배웅하여 구강역 변에 이르러, 배가 한 척 있어 육조더러 배에 오르도록 하고 오조가 노를 잡고 자신이 저었다. 육조 가라사대, 「화상和尙께서는 앉으시길 청하오, 제자가 노를 저어야죠」. 오조 가라사대, 「내가 그대를 건너줌이 맞소」. 육조가 가라사대, 「모를 때는 스승이 건너주지만, 깨달으면 스스로 건넙니다」. 건넌다는 말은 하나이지만 사용처는 다르다. 육조 혜능이 스승을 계몽하여 법을 건네 오로지 자성自性으로 스스로 건넘이 맞습니다. 오조 가라사대, 「그렇네, 그렇네」! 이후의 불법은 그대로부터 크게 행해질 것이라.
부주附註:
1.五祖是師.不應搖艣,其搖艣者,是機于六祖,觀其悟否也。
오조는 스승으로서 노를 저으면 안 되고 노를 저어야 함은 육조에게 이 기회가 있으며 그 깨달음을 관찰함이 아니라.
2.五祖是示機曰:「合是吾度汝」。
六祖又悟,應之云云,洞契玄機。 [重心在合](因緣法成熟)
오조가 기회를 보이며 가라사대, 「내가 자네를 건너줌이 맞소」
육조가 다시 깨닫고 응하여 운운한 것은, 동굴의 현묘한 기미이다. [거듭된 마음이 합친 것이다] (인연법이 성숙함)
3.五祖印可曰:「如是如是」,即佛心印也。
오조가 인가하여 가라사대, 「그렇소, 그렇소」 즉 불심이 인가한 것이라.
◎切記著:達摩尊者有言:「諸佛法印,非從人得」。
절대 기억할 것은 달마존자가 한 말은, 「모든 불법은 인印(부합함)이오,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佛法的破行蘊<壬天干>,只是破迷執。(換言之.壬天干含有迷執在內.故迷時師度.悟時自度)。當我們發覺心念不正不淨時,當立即轉變心念,改邪歸正。(利人)捨己從人。(達人)隨順真理,不可為了面子問題,利益問題而錯誤到底,(學習放下)以至於害人害己。所以佛法修行主張鍊念心念使之堅固,以便擋負重任。<任重道遠>同時有主張心念使之柔軟(柔軟心)以免變得僵化而失去活性。(活潑天機)心念柔軟的人無所執著,沒有成見,一切隨緣,故能灑脫自在,無拘無束,如去如來……。(像方外人)但他(們)又富有慈悲心,不忍見眾生受苦,念念不忘救度眾生,此念念不忘的心,正是堅固的執著。(合乎孔子的「擇善固執」的意義,不是守著做善事,叫做擇善固執,那是人性問題)故真正說來。
불법에서 행온을 파하는 〈임천간〉은 그저 미집迷執을 깰 뿐이다(바꾸어 말하면 임천간에 함유된 미집迷執은 안에 있고, 따라서 미혹된 때에는 스승이 건너주고 깨달은 때에는 스스로 건넌다). 우리가 심념이 바르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함을 발각할 때, 곧바로 심념을 바꾸고 사악함을 바꾸어 바르게 돌린다.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함은) 자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른다. (달인達人은) 제대로 진리를 따르지만 체면 문제, 이익 문제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착오가 있고 (학습을 내려놓고) 남을 해치고 자기를 해치기에 이른다. 따라서 불법을 수행한다고 주장하려면 마음을 단련해서 심념을 견고하게 하고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무거운 도를 맡는 것은 멀다〉 동시에 심념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유연심) 누에고치처럼 되어 활성을 잃는 변화를 면할 수 있다. (활발한 천기는) 심념이 유연한 사람은 집착함이 없으며 편견이 없고 일체를 인연에 따르며, 따라서 능히 거리낌 없이 자재自在할 수 있고 구속됨이 없으며 여거여래如去如來가시난닷 도셔 오쇼셔.......한다.
(방외인方外人처럼) 다만 그들은 자비심이 많고 중생이 고통받는 일을 차마 볼 수 없으며 생각할 때마다 중생 구제를 잊지 않고, 이러한 마음은 잊지 못하는 마음이며 바로 견고한 집착이다. (공자의 「좋은 것을 택하여 고집함」이라는 의의에 들어맞으며, 착한 일을 지켜서 계속함이 아니라, 택선고집擇善固執이라 부르는 것은, 이는 인성의 문제이다).
修行人是----- 不執而執 (執其善念)
執而不執 (不執於人.事.物)
最後才能趨向中道。(回歸中央土)
수행인은----- 고집하지 않음을 고집한다(그 착한 신념을 고집한다).
고집함을 고집하지 않는다(인人.사事.물物에 집착하지 않는다)
최후에 비로소 중도中道를 쫓는다。(중앙토中央土로 회귀)
阿利郞
註:為什麼破行蘊(行陰)是破「迷」執。
因為<壬>的左輔是在欲界裡。(癸天干)也在欲界,唯沒有五蘊之星辰。
及欲界,就有住相,有住相,就有名相,有名相,就有迷境。
故佛家有語:「分別名相不知休,<壬> 入海算沙徒自困」。<癸>
주: 어째서 행온(행음)을 파하는 것이 「미혹」에 집착함을 깨는가.
〈임〉의 좌보가 욕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계천간) 역시 욕계 안에 있지만, 그러나 오온의 별은 없다.
욕계에 이르면 주상住相이 있으며(몽환의 세계), 주상이 있으면 명상名相이 있게 되며, 명상이 있으면 미혹의 경계에 있게 된다.
따라서 불가에 있는 말은, 「명상名相을 분별함에 쉼을 모르고〈임壬〉 바다에 들어가 사막으로 여기면 도로 스스로 곤란해진다〈계癸〉.
左輔的解脫在----「智慧解脫」。要義在心經。
五蘊是從(丙.戊.己.辛.壬)天干所組成的。
좌보의 해탈이 있는 곳은.....「지혜로써 해탈함이다」. 요의要義는 심경에 있다.
오온은 (병. 무. 기. 신. 임)의 천간으로부터 조성되는 것이다.
心經的「照見五蘊皆空」,就是指「左輔」的功能性,由<壬>反觀回來,才能''照見''。(般若的觀照)照見其''空''。此「空」不是沒有,而是指須用---「空慧」來「觀照」,才能知道五蘊皆假,何足你在人間,執其住相。不住其住,就解脫了。方可「度一切苦厄。
심경에서 「오온을 조견하면 모두 공이다」함은 「좌보」의 기능성을 가리키며, 〈임〉으로부터 반관反觀하면 비로소 “조견照見”할 수 있다.
(반야의 관조)는 그 “공”을 조견한다. 이 「공」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빈 지혜」를 써서 「관조」해야 함을 가리키며 그래야 비로소 능히 오온이 모두 거짓임을 알며, 얼마나 족히 당신이 인간에 있으면서 그 주상을 고집하는가. 그 주住에 주住하지 않으면 해탈하는 것이다. 비로소 가히 「일체 고액苦厄을 건넌다.
沒有空慧,使難走出左輔的家門。
빈 지혜가 없으면 좌보의 가문에서 나오기 어렵게 한다.
楞嚴經曰:『 在染不染<無住>曰淨
<都是對'左輔'的破執法門>
在縛不縛<無念>曰妙 』
능엄경에서 가라사대:『 오염이 되었거나 말거나
<무주無住>를 일러 정淨이라 함
<모두 '좌보左輔'의 집執을 깨는 법문法門에 대한 것이다>
묶였거나 말거나 <무념無念>을 일러 묘妙라 한다 』
左輔<行蘊>的破解,在於破「迷執」。<見前文<一>>。
重點在破---「住相之迷」。
但左輔的功能,是主導你一生,全方位的導航運作者。
若論人生行程,它是你人生方向的指針,也是你性格與行為形成的始作俑者。所以,每個人,不能沒有左輔,緊緊地做了你身體的貼身特衛。
無明至老死。(文曲/左輔)一起之主因即「生」,就「住」於世間,世間有「相」,所以使人都依→「住相」而以「妄」為「真」的執住。
站在一個修行者來言,「壬」天干,就是佛家常言「見性」功夫之所在處,而「修」字,應是--「見性後,方可言修」。[人,若未見性,莫言修]。
좌보左輔의 <행온行蘊>을 파해破解하면,在於破「미집迷執」을 파破하는 것에 있다。<전문前文<一>을 보라>。
증점은---「주상住相의 미혹迷」을 파破하는 것에 있다.。
단 좌보左輔의 기능은,당신의 일생을 주도해서,전방위로 배를 이끌고 운전하는 것이다.。
만일 인생의 여정을 논하자면,그것은 당신 인생의 방향의 지침이며,게다가 당신 성격과 행위를 형성하는 시조용始作俑이다。 따라서,매 게인은,좌보左輔가 없을 수 없고,단단히 당신 신체의 밀착 경호를 한다。
무명無明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문곡文曲/좌보左輔)는 일기一起하는 주인主因이므로 즉 「생生이고」,세간에 「주住」하게 되며, 세간에는 「상相」이 있고,따라서 삶들을 모두→「주상住相」을 입히고 「망령妄」되게 「참真」된 집착執을 하게 힌다。 일개 수행자로서 입장에서 말하자면,「임壬」천간은,바로 불가에서 늘 말하는 「견성見性」공부功夫의 소재처이며,아울러 「수修」자字는,응應함이--「견성후에 비로소 언수言修를 한다」。[사람이,만일 견성見性을 못했으면,수修를 말할 수 없다]。
주註:
大家都會說,我們今生好好修,請問如何修起?若見性方言起修,那麼我可大膽的告訴諸學,「左輔」與「壬」天干,就是你要來壬生修行的課程,在「修」這個「左輔」。
여러분이 모두 말하는 것은, 우리가 금생에 잘 수련해야 하는데, 한번 묻기를 어떻게 수련을 시작하는가? 만일 견성見性하면 비로소 수련을 시작한다고 하며, 그래서 우리가 대담하개 제학諸學에게 알리는 것은 좌보와 임천간이 바로 당신이 임년생으로 와서 수행하는 과정이며 이러한 「좌보」를 수행한다.
『文曲是一個成就者,必經之路。
左輔是一個成就者,住持道場。』
문곡은 일개 성취자이며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다.
좌보는 일개 성취자이며 도장을 주지한다.
套入斗數,「己」天干與「文曲」,是我的身(文曲)所在位,因何來下凡?(己天干)即由「果」來看來時路的「因」。(借什麼因緣來到人間?)
두수에 적용하면 「己」천간과 「문곡」은, 나는 몸(문곡)의 소재지이며, 어째서 속세로 내려왔는가? (기천간) 즉 「과」로부터 보면, 오는 시간길의 「인因」이다(어떤 인연을 빌려 인간에 왔는가?)
而「左輔」呢?是因你已是有身之人,必在人間有所「居」。(看左輔宮位),即有所居,猶如給你一個「道場」。而「壬」天干之處,一定會化科給左輔,所以像一個皇帝,龍袍加身,這就是你在道場上該負起的責任,為壬天干而「住持」。(人人一道場,命命各不同) 單憑這兩顆星及兩個天干,夠你苦樂一生,夫復何言? 若要去苦得樂,唯有你要有「空」慧去「觀照」它,自得解脫。否則眾生相,用這個法則,知彼知他,都不待話下。
그러면 「좌보」는? 당신 자신이 몸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인간에서 「거처」할 곳이 있다(좌보 궁위를 보라). 즉 거처할 곳이 있으면 마치 당신에게 한 개 도장을 준 것이다. 아울러 임천간의 처소는 반드시 화과를 좌보에게 주어 따라서 마치 황제처럼 용포를 두루며, 이것이 당신이 도장 상에서 부담해야 할 책임이며 임천간이 되면 「주지住持」이다. (사람마다 한 도장이 있으며, 명명命命마다 각자 다르다. 단순히 이 두 과성 및 두 천간에 의지해서 당신이 고락苦樂하는 인생을 대저 거듭 어떻게 말하는가? 만일 고생을 보내고 즐거움을 얻는다면, 오로지 당신은 「빈」 지혜로써 그것을 「관조」하면 자연히 해탈을 얻는다. 그렇지 않으면 중생상이며, 이 법칙을 써서 그를 알고 남을 알면 모두 말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