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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오법신五蘊五法身(11)-개별식강의 < 二 >③

從上述而對左輔有一種偏知的感覺

위에서 좌보에 대해 서술한 것은, 일종의 편향된 지식이라는 감각이 있다.

 

如果你自覺人生難得自己的生命該是莊嚴與珍重的那麼你首先要認識左輔」,才能體悟人生難再而加以自珍自惜它不是別人它是你生命的物自身」。都有待人類自我創造生命的價值

만일 당신이 스스로 사람의 삶이 얻기 어렵다고 자각하면 자기 생명은 당연히 장엄하고 아울러 진귀한 것이며 그러면 당신은 먼저 좌보를 알아야 비로소 사람이 삶이 어려움을 몸으로 깨달을 수 있으며 더해서 스스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며, 그는 당신 생명의 물질 자신이다. 모두 인류가 자아 생명의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기다린다.

以致在<起信論>開張明義第一句就說:歸命盡十方」。(後才續前言)意謂著要了解左輔」,尊重自己也敬重他人生命的本體都是珍貴的一視同仁的是元...貞的(居東)與孔子的踐仁是同等的肅然起敬

<기신론>에서 먼저 전체의 의미를 밝혀 제일구에서 말하기를, (나무南無) 온 시방에. (나중에 비로소 앞의 말을 이어가며), 그 뜻이 말함은 좌보를 이해하려면 자기를 존중하고 타인을 받들어야 하는 바, 생염의 본체는 모두 진귀한 것이다. 은 인과 같다고 여길 수 있으며, 이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며 (동쪽에 거하고) 공자가 인을 실천한 것처럼 이는 경건함에 옷깃을 여미는 것과 같다.

 

然而何謂歸命?或曰覆命歸根?

在佛的聖號上加南無」,其漢譯是皈命或歸命

字做歸投解;字作自己生命或慧命

歸命則是生命的投注用意比較隆重或慎重

그런데 어째서 귀명歸命이라 하거나 혹은 가라사대 명을 다시 뒤집어 뿌리로 돌아가라.하는가?

불교에서는 성호에 나무南無더했으며,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귀명皈命 혹은 귀명歸命이다.

 

歸命兩字有三種解釋

<1>是身心生命歸投於佛

<2>是歸順佛的教令

<3>是將命根歸還---本源法性」。

귀명歸命두 글자는 세 종류 해석이 있다.

<1>이는 심신 생명이고 붓다에게 귀의한다.

<2>이는 붓다의 교령에 귀순한다.

<3>이는 명이 뿌리로 돌아간다...본래 근원의 법성

 

但一般的解釋認為是將身心生命歸向三寶即是這是後人闡述的

다만 일반적 해석으로 인정되는 것은, 심신 생명이 삼보에게 즉시 귀의한다. 이는 후인이 자세히 서술한다.

 

左輔而言是屬於第三項歸還本源法性

좌보로 말하자면 이는 제3항에 속하며, 본래 근원인 법성에 돌아간다.

 

文曲.貞如的心

문곡은 정갈하고 굳은 마음이다.

才可以明心見性

비로소 마음을 밝혀 본성을 본다.

左輔.本源法性

좌보는 본래 근원인 법성이다.

眾生是隨法界(貪狼)在做緣起的

중생은 법계(탐랑)를 따라 인연을 일으키고 있다.

 

<起信論>

第三句就說:及彼身體相(文曲)法性真如海(左輔)無量功德藏"歸藏"<p.20)

따라서 <기신론>

3구에서 말하기를, 그리고 그 몸의 본체와 모습으로서(문곡), 법성과 진여眞如의 바다인(좌보), 무량한 공덕의 갈무리귀장”(나무南無)

 

역주)진여는 우주 만유의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이다. 법성은 존재를 존재이게 하는 것 또는 존재의 진실로서 불변하는 본성을 말한다.

 

是佛身,「是指佛身的本體---法身而言

是佛的色相(亦即指報.化佛的形象)

故體相二字即包含佛的三身在內(一涵三)

은 불신佛身이고,「는 불신佛身의 본체를 가리키며---법신法身이라 한다.

은 붓다의 색상色相이다(또한 곧 보를 가리키며 불이 변화한 형상形象이다).

따라서 체상體相 두 글자는, 즉 븟다의 내재하는 삼신(은 삼을 포괄한다)

역주)유라시아 전체에 걸쳐 삼은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의 삼신할매, 기독교의 삼위일체 등등

 

意解: 뜻풀이

 

文曲就是你的」。(文曲所在宮位即猶你處解(看宮位))而文曲的身」。就是你如何運作這個的功能合起這運作的功能就成我們這個有功能運動的本能是謂身體」。亦即法身(如我們有心心見能生萬法.是身之功能此功能性就是身之本體----法身也)

문곡은 당신의 이다. (문곡이 소재하는 궁위는 곧 당신의 어느곳에 있는가를 풀이하는 것과 같다(궁위를 보라). 그리고 문곡의 신는 당신이 어떻게 이 의 기능을 운작運作(운전 작동)하는가 이며, 이 작동 기능을 합해서 우리가 이 기능, 운동적 본능을 이루는 것을 신체라고 부른다. 또한 법신이기도 하다.(만일 우리가 마음이 있다면, 마음을 보면 능히 만법을 낳으며 이는 몸의 기능이고 몸의 본체가 되며 .....법신이라.

:

文曲在夫妻在父母這只是

但你怎麼與夫妻父母相處這相處之」˙(方法)就是法身˙

문곡은 부부에 있고 부모에 있으며 이는 단지 으로 풀이한 것이다.

다만 당신이 부부, 부모와 어떻게 지내는가. 이렇게 같이 지내는 도(방법)가 법신이다.

 

前文曾言:以文載道在文曲而言是指法身

앞의 글에서 이미 말했듯이, 글월로써 도에 싣는다에서의 자는 문곡에 있어서 말하자면 법신을 가리킨다.

 

()天干是文曲之來原處在理論上是」,文曲的落點應該是」。可是依應用上而言要倒過來猶如我已知要居於何處」,回首尋找來時路

()천간은 문곡이 유래한 곳이며, 이론상 이는이고, 문곡의 낙점은 당연 이다. 응용상에서 말하자면 뒤집어야 한다. 마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느 곳에 살아야 하는가는, 머리를 돌려 올 때의 길을 찾아야 한다.

 

即所謂的身體」,又好比一個人穿什麼樣的衣服(己天干之位)才能更合適的一般道理

즉 소위 신체은 일개인이 어떻게 의복을 입는가(기천간인 궁위) 이며, 그래야 비로소 더욱 합당한 일반 원리이다.

 

(文曲的位置) (문곡의 위치)

故體相即-- (文曲位置上的功能性)法身 -- (一身含三身)

(己天干之位)

따라서 체상體相은 즉, 1)(문곡의 위치)

2)(문곡 위치상의 효능성, 작동성)법신 -- (일신은 삼신을 포함)

3)(기천간인 궁위)

 

因此佛的三身只有法身是一真法界

良以法身為真(化皆假)

이 때문에 븟다의 삼신할매는 단지 법신이 있을 뿐으로서 이는 참 법계의 하나임.

선량한 법신이 참이며((갚음), ()화는 모두 거짓)

己天干.每人各不相同如衣服.衣隨人而需.(色相)

기천간은 각 사람이 각자 달라서 가령 의복이 있으면 옷은 사람을 따라 필요로 한다(색상色相)

 

歸 納: (文曲的引論)

귀납: (문곡 끌어내기)

 

<>人要吃飯才會長大(理論性)指文曲的落點(身體)……法身

<1>사람은 밥을 먹어야 자란다. (이론성) 문곡의 약점을 가리킨다. (신체)......법신

 

<>食以養我色身那也要人吃得下才會長大

(應用性)指己天干之位(色相)

物能養我此色身是不是借假修真的白話解(倒果為因)

<2>음식으로 내 색신을 기르며, 그래서 사람은 먹어야 비로소 자란다.

(응용성) 기천간인 궁위(색상色相)를 가리킨다. . .

따라서 물은 능히 내 이 색신을 기를 수 있으며, 이는 가짜를 빌려서 진짜를 닦는다고 함을 쉬운 말로 풀이한 것이 아닌가(결과를 뒤집어 원인으로 한다).

 

即然之文曲它的作用就是能夠借假修真那麼它就可以引動出

它的朋友---左輔」,因為左輔為我這色身之

先要受十個月但反過來說受苦的僅十個月(左輔)

但文曲卻要過一輩子(色身)

즉시 그러한 문곡, 그것의 작용은 능히 가짜를 빌려 참으로 수리한다. 그러면 그것은 끌어 움직여 나올 수 있고, 그의 친구....좌보, 좌보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이 색신의 태어남전에 먼저 십개월 를 받는다. 그러나 반대로 말해서 고통을 받음은 단지 십개월이며(좌보), 그러나 문곡은 오히려 평생을 지내야 한다(색신).

 

在肚裡是十個月(猶甲~)

자궁 안에서 10개월이다(~).

 

在生命裡是十年一限放大百倍猶人過百歲(~)

생명 안에서 10년이 한 대한이며, 백배로 키울 수 있지만 사람은 기껏해야 100세이다(~).

 

由這樣的引論左輔比較為生固執遠勝過文昌

文昌是受後天的教育的影響隨時都有改變思想的可能性

而左輔是先天的所謂江山易改(文昌)本性難移(左輔)

一點也不誇張

이처럼 끌어낸 논의는 좌보가 비교적 고민기를 낳기 쉽고 고집은 문창보다 훨씬 세다.

문창은 후천적 교육의 영향을 받아 수시로 사상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좌보는 선천적이고 소위 강산은 쉽게 바뀌어도(문창) 본성은 고치기 어렵다(좌보).

한 점도 과장하지 않았다.

 

」,指內在己身之悟性力發於內(文曲的內聖)

」,指外在行為之決策力行於外(文昌的外王)

는 자기 몸의 본성을 깨닫는 힘을 가리키며, 안에서 발휘한다(문곡의 내부 성인)

는 외부에 있는, 행위가 결단하는 힘을 가리키며, 밖에서 행동한다(문창의 외부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