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曲星,是「真我」與「假我」,在做一線之隔。識得「真我」是解脫之道,若識「假我」那就在生死輪迴流浪。
문곡성에서 「참 나」와 「거짓 나」는, 첫 번째 구분 간격이 된다. 「참 나」를 아는 것이 해탈의 길이며, 만일 「거짓 나」를 알면 이는 삶과 죽음을 윤회하는 유랑길인 것이다.
「真我」是宇宙人心的本體。楞嚴經稱之為「如來藏」。他與五蘊所成的「假我」是不一不異的。五蘊即「如來藏」之用。如來藏即「五蘊」之體。離體無用,離用即無體,譬如水與波,離水即無波,離波則水不可得。
「참 나」는 우주에 있는 사람 마음의 본체이다. 능엄경에서는 「여래장」(중생의 청정한 본마음)이라 칭한다. 그것과 오온이 이루는 「거짓 나」는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오온은 즉 「여래장」의 용用(쓰임)이다. 여래장은 즉 「오온」의 체이다. 체를 떠나면 용이 없고 용을 벗어나면 즉 체가 없으므로, 비유하자면 물과 파도와 같아서, 물을 벗어나면 즉 파도가 없고, 파도가 없이는 물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其自救之道,就要依佛陀的教示,回歸此一本體.(文曲為首)。顯明此一本體,破除對五蘊得執著,轉化五蘊,善化五蘊。而不是被五蘊所役使,所迷惑。亦不是要捨棄五蘊,離開五蘊,再去另外找一個本體,這句一定要切記著。就像佛本心中求,何來心外更有佛。?(註:心外的佛,是己成就的佛,而不是你.你是你.你不是他,而他也不能代表你。)
그 자신을 구하는 도道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이 본체로 돌아가는 것이다(문곡이 우두머리). 이 첫 본체를 드러내려면 오온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오온을 바꾸어 오온을 선하게 하라. 아울러 오온에게 부림 당하고 혼란 당하지 마라. 또한 오온을 버리고 오온에서 떠나고 다시 가서 다른 본체를 하나 찾을 것이니 이 구절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마치 붓다는 본래 마음 중에서 구하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마음 밖에 또 붓다가 있겠는가? (주: 마음 밖의 붓다는 자신이 성취한 붓다이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은 그가 아니며 그는 당신을 대표할 수 없다.)
「真我」雖是無形無相,無有一法可得。但它的價值卻是無量無限的。出生萬法,為宇宙萬物的根源,妙用無窮,蘊藏無量的智慧,能推伏一切煩惱本。故----<<永嘉政道歌>>云:「無價珍,用無盡,利物應機中不吝,三身四智體中圓,八解六通心地印」。
「참 나」는 형태가 없고 상태가 없지만 그것을 얻을 유일한 법은 없다. 그러나 그 가치는 무량하고 무한하다. 만법에서 태어나 우주 만물의 뿌리이며, 무궁한 묘용이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지혜가 있으며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따라서---- <영가정도가>에서 이르기를: 「무가보는 써도 다함이 없나니 중생에 이로운 보물이며 때를 따라 끝내 아낌이 없음이라, 삼신사지는 본체 가운데 원만하고 팔해탈 육신통은 마음자리에 찍힌 것이다」。
※(三身,八解,指著就是文曲星)
(3신, 8해가 가리키는 것은 문곡성)
주)3.8은 목木으로서 문곡은 목성(본체는 수성)
역주)
삼신三身이란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 또는 화신化身을 말하고 사지四智란 대원경지大圓鏡地, 평등성지平等性地, 성소작지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를 말한다.
삼신과 사지를 성취하면 이를 부처라 하는데, 우리가 마니주(보주寶珠)를 완전히 알아서 자성을 바로 깨치면 삼신사지가 원만구족해서 다시는 더할래야 더할 것이 없고 덜래야 덜 것이 없는 구경법究竟法을 성취하는 것이다.
팔해탈은 진여眞如 해탈의 경계를 여덟가지로 분류한 것인데 각각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여의 대용인 줄 알면 된다. 육신통이란 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신족통神足通,숙명통宿命通, 타심통他心通, 누진통漏盡通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마음에 체득을 해보아야 아는 것이지 말로만 해서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那文曲星,如何破除他的迷執呢?
그러면 문곡성은 어떻게 그의 미혹을 깨는가?
色指肉體而言,(包括生理)。眾生都對肉體起迷執,則能障蔽本性的光明,故謂之色蘊。眾生肉體有很深的執著,一天到晚總是為著肉體在打算。肉體有很多需要,要吃,要穿,要住,要行,結婚又要傳宗接代,真是麻煩得很,但是我們大部分的人還是心甘情願,不辭辛勞得為它服務,為它所奴役。一個人若過份看中肉體的生活,而忽略精神的活動與提升。以佛法來說,就是這個人的「身見」很重。身見重的人,會特別怕死。內心很少慈悲心,智慧不易顯現。由是對自己更沒有信心,沒有安全感,尤其這種人,唯恐失去肉體,於是又特別注意他的健康,一天到晚擔心自己會生病。為維持身體的健康,他會不惜花很多時間來鍛鍊身體,檢查身體,或花很多的錢,去買健康食品,或保健器材來保養身體。殊不知,這些種種的努力,到頭來會變成一種精神的負擔,甚至會帶來副作用,後遺症。
색은 육체를 가리켜 말한다(생리를 포괄). 중생은 모두 육체에 대해 집착을 일으키므로 곧 능히 본성의 광명을 가리며, 따라서 색온이라 이른다. 중생은 육체에 아주 깊은 집착이 있으며 하루 종일 결국 육체를 위해 계획하고 따진다. 육체는 필요한 것이 많아서,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살아야 하고, 행해야 하고, 결혼하고 또 대를 이어야 하니 진정 번거롭지만, 그러나 우리 대부분의 사람은 기꺼이 그것을 위해 봉사하고 노역을 한다. 일개인이 만일 육체의 삶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정신의 활동과 향상을 소홀히 하면 안 되며, 불법으로 말하면 이 개인의 「신견身見」은 매우 무거운 것이다. 신견이 무거운 사람은 특별히 죽음을 두려워 할 것이다. 마음속에는 자비심이 적어 지혜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더 없고 안정감이 없으므로 특히 이런 사람들은 육체를 잃을까 봐 그의 건강에 특히 신경을 쓰고 하루 종일 자신이 아플까 봐 걱정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과 건강검진, 많은 돈을 들여 건강식품이나 건강 장비를 구입해 몸을 가꾸기도 한다. 이런 노력이 결국 정신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부작용, 후유증까지 동반한다.
身見太重的人,若走到極端,都會希望自己長命百歲,(如求天同)反而不會去求內心世界,精神不朽,(如求天梁)。
신견이 너무 중한 사람은 극단에 가면 모두 백세까지 장수하기를 바라며(가령 천동天同이 (장수를) 구하듯이) 오히려 내심세계를 구하지 않고, 불후의 정신을 구하지 않는다(가령 천량天梁이 (불후의 정신을) 구하듯이).
◎「真我」,「假我」,就在此分野了。
「참 나」, '거짓 나'는 여기서 갈라진다.
再來,對於肉體太執著的人(身見重),會演變引申成對''錢財''的執著。(文曲易主才的由來。)因為錢財可以用來保養,保護肉體。於是變成一方面對於財物過度地熱烈追求,一方面對於擁有的財物吝嗇固守,若嚴重一點,會造成人為財爭,人為財死的結局。
거듭해서 육체에 대한 집착이 심한 사람(신견身見이 무겁다)은 연변演變 인신引申하면 '돈'에 대한 집착이 이루어진다.(문곡文曲이 재財를 주主하기 쉽다는 유래.) 돈은 몸을 가꾸고 보호하는 데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재물에 대해 지나치게 열렬히 추구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진 재물에 대해 인색하게 고수하게 되며, 좀 더 심각하면 사람이 재물을 위해 다투고 사람이 재물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不要以肉體的我,代表自我,自我是要智慧去認識自己,一般身見重的人,常不知精神生活是何物?他們不會關懷真理的追求,智慧的啟發,品格的提升。也許這是這些人在世上的一大憾事。
육체적인 나로 자아를 대표하지 말고, 자아는 지혜롭게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몸이 중요한 사람은 항상 정신생활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은 진리의 추구, 지혜의 계발, 품격의 향상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佛法告訴我們,肉體是假借因緣所成,是假的,不是真的;是脆弱的,不是堅牢的。固然,人身難得,我們不可以故意去傷害肉體,而修行也是要借重肉體,所以,適度的保護,保養是必需的,但不宜對它太執迷。肉體是短暫的存在,借宿在天地間,時節因緣到了,我們都要灑脫自在地捨離它,去我們該去的地方。要了解,身心是一體的,交互影響的。而且心對身的影響要比身對心的影響來得大,來的強。「心是身之主,身為心之客」,主客是不可顛倒的。所以,修心要比修身來得重要。修心的要只在於放鬆對身體的執著,使心如虛空,如此全身的精神鬆弛,氣脈暢通,血液循環自然良好,而身體會趨向安泰健康。
불법이 우리에게 알리는 것은, 육체는 인연을 빌려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는 거짓이며 참이 아니다. 이는 취약하며 견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인체는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고의로 육체를 해칠 수 없고 수행도 육체를 중히 여겨야 하므로 적당한 보호와 보양이 필수적이지만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육체는 짧은 존재로 천지에 머물며 인연이 닿으면 우리는 모두 소탈하고 자유롭게 그것을 버리고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가야 한다.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은 마음보다 몸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고, 몸은 마음의 손님이다.」 주객은 뒤집을 수 없다. 따라서 수신修身보다 수심修心이 중요하다. 마음을 닦는 것은 오직 몸에 대한 집착을 늦추고 마음을 허공처럼 만드는 데 있는데 이렇게 온몸의 정신이 이완되고 기맥이 막힘없이 통하며 혈액순환이 자연스럽고 몸이 편안하고 건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주註:
文曲星,注意:血液中膽固醇,血脂肪過高,或變成血管硬化,血壓過高,心臟病腦溢血,坐骨神經痠痛,骨刺……。
문곡성, 주의: 혈중 콜레스테롤, 혈중 중성지방이 너무 높거나 혈관경화로 변성되거나 혈압이 너무 높거나 심장병, 뇌일혈, 좌골신경통, 골자통...…。
역주)문곡화과 혹은 화기, 즉 기년생 혹은 신년생에 해당한다. 혹은 대한에서 기 혹은 신을 만나면 그러하다.
註:佛是無量壽者,但佛的無量壽是「法身」-----常寂光的無量壽。
不是應身,化身,肉身的無量壽。 ※(佛是法性成佛的)
주: 붓다는 무량수이지만 붓다의 무량수는 「법신法身」인 상적광常寂光의 무량수이다.
응신, 화신, 육신의 무량한 수명이 아니다. ※(불은 법성이 성불한 것이다)
역주)
법신法身: 법어 dharma-kāya
① 삼신(三身)의 하나.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
② 부처가 설한 여러 가지 가르침.
③ 있는 그대로 대상을 직관하는 주체.
④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법성法性: 범어로는 dharmatā
①『화엄경』에서는 ‘존재를 존재이게 하는 것’ 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존재의 진실로서 불변하는 본성’의 의미로 사용된다.
② 『중론』에서의 dharmatāsbavhāva로서 ‘존재의 자성自性’을 의미한다.
③『유마경』에서는 진여眞如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④『중변분별론』에서는 ‘존재의 보편적인 양상’의 의미를 지닌다.
古代高僧大德皆致力於開發真我(佛性)。他們並未注重色身之保養,但多能高壽以終,可見真我(佛性),才是肉體的根本。
고대의 고승 대덕은 모두 「참 나」(眞我·불성) 개발에 힘썼다. 그들은 색신의 유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대부분 장수할 수 있어 「참 나」(불성)가 육체의 근본임을 알 수 있다.
佛性不斷啟發顯露,其人心如虛空,不刻意求健康而自然健康。六祖惠能至今果真肉身不朽,並非保養來的。而是大徹大悟,戒行高潔,定惠功深使然。
要破色蘊,唯獨四字----「以文載道」。
불교의 본성은 끊임없이 깨우쳐 드러나고, 그 인심은 허공과 같아서 일부러 건강을 추구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건강하다. 육조혜능은 지금까지 정말 육신이 불멸한 것이지, 결코 보양해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철대오하며 계율을 지켜 행하고 고결하며 정혜가 있고 공덕이 깊은 사연이다.
색온을 깨려면 오직 네 글자, 즉 '이문재도'(글월로써 도를 담는다)가 있어야 한다.
師者,所以「傳道,授業,解惑也」。
스승님, 그래서 「전도, 수업, 해혹」입니다.
역주)정혜定惠 : 불법佛法은 선정禪定과 지혜가 둘이 아님을 근본으로 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