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靈生命的左右昌曲是存在於每一個人的心態與心想中,是謂眾生相。 既然是眾生相,就會因眾生的生活訴求在不同的因素,因緣下,產生不同的人,千般百態。以致,此四顆星,不是以「吉凶」的姿態,呈現在你生命的眼前。而是在深入你生命,內心的底層,展現出人生真實的另一面。
심령 생명의 좌우창곡은 매 일개인의 마음 상태와 생각 중에 존재하며, 이것을 중생상衆生想이라 한다. 기왕에 중생상이니, 중생의 생활 수요에 있어 서로 다른 인소로 인해, 인연 아래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 낳는 것은 온갖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이 네 과의 별은 「길흉」의 모양새로서 당신 생명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 생명 안에 깊이 들어가 속마음의 밑바닥에서 인생의 진실한 다른 면을 전개해낸다.
若此四顆星,就可決定吉凶。那其它的十四顆星級四化,豈不是沒有存在的價值?這有道理嗎?我們的生命吉凶,是由四化,宮位及十四顆星辰來決定。是現象世界的人生觀。此四星是要我能──「見性」,再來解決命運中可能會發生的吉凶,做一種補救或求解脫之道,這是哲學的宗旨。也是命理有它存在的價值觀。
이 네 과의 별은 길흉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면 나머지 십사과 별 급의 사화는 어찌 존재적 가치가 없는가? 이는 어떤 이치인가? 우리 생명의 길흉은 사화, 궁위 및 십사과 별 들로부터 결정한다. 이것이 현상 세계의 인생관이다. 이 네 별은 우리가 「견성見性」할 수 있어야 하며, 거듭해서 명운 중에서 발생이 가능한 길흉을 해결해야 하고, 일종의 보구補救 혹은 해탈을 구하는 길이 되며, 이것이 철학적 종지宗旨principle이다. 이것이 명리에 그들이 존재하는 가치관이다.
一個人,就算他不懂命理,但他基本的生活方式,就是── 我有此身(文曲)憑我的教育、知識、意識…等(文昌)。再加上行為(左輔)如習性、貫性或思考,就可以走完人生,這就是宿命人生而已。但對眾生而言,有的已經很滿足了。可是有的人,不以此為滿足的人生,卻大有人在。
일개인이 그들의 명리를 계산해서 알 수는 없지만 단 그들의 기본적 생활방식은, 나에게는 이 몸(문곡)이 있고, 이를 빌려 나에게 교육, 지식, 의식 등(문창)이 있다. 다시 행위(좌보)가 더해져서 가령 습성, 관성貫性, 사고가 있어서 인생을 완주할 수 있으나 이것은 숙명적 인생일 뿐이다. 그러나 중생에 대해 말하자면, 이미 있는 것은 아주 만족할 만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것에 만족하는 인생이 아니며,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부지기수로 많다.
此大有人在的人,盡走在──「左.右.昌.曲」的道路上。像他邁進。
이 부지기수로 많은 사람은, 「左.右.昌.曲」의 도로를 끝까지 달린다. 마치 그들(숙명에 매인 사람들)처럼 매진하는 것이다.
所謂慈悲,就是 ──
이른바 자비라는 것은, 바로
「無緣大慈」
차별없는 사랑
「同體大悲」
한 몸같이 배려하는 마음
─之下所產生的禮敬諸佛菩薩,是他們有慈悲心。
아래에서 생기는 제불보살을 예경禮敬하는 것이며 이것이 그들에게 있는 자비심이다.
而我們只有惻隱同情心。
그러나 우리에게는 단지 측은 동정심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