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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 오법신五蘊五法身(23) 좌보가 해탈하는 길左輔的解脫之道⑥

hmchnzami7pabur 2024. 7. 12. 10:20

 

凡左...一律都在宇宙實在這邊

(屬法性宗.屬空教)要有空慧觀此四顆星原來都是 →「中道實相」。

一點也不做作用此空慧(能所)觀察此四顆星即證實相般若」。

但這能所的在右弼星

무릇 좌우창곡은 일률적으로 모두 우주실재宇宙實在의 이쪽 변에 있다

(법성종法性宗에 속하고. 공교空教에 속함)공혜空慧의 관이 있어야 하며 이 네 과의 별은 원래 모두 →「중도中道의 실상實相이다

한 점도 지어서 만들지 않는다이 공혜空慧를 써서 능히 관찰한 바 이 네 과의 별은실상實相의 반야般若를 증명한다

다만 이 능한 바의 는 우필성右弼星에 있다

 

哲學都在陰陽之道路上縱教你能夠達到陰陽不測乃謂神的神機妙算

還是在陰陽內(神變.神通是陰陽邊底事還是現象界)

唯獨右弼星能陰能陽能極能渾

(這種人.在古今中外的偉人史中太多了) 人可歷史

철학哲學은 모두 음양陰陽의 도로道路 위에 있고가르침에 따라 당신은 능히 음양을 측정할 수 없음을 일러 신이라 한다는 신기묘산神機妙算에 도달할 수 있다

오히려 음양陰陽 안에 있다(신변神變이나 신통神通은 음양 저변의 일이며오히려 현상계現象界이다)

유독 우필성右弼星능히 음이기도 하고 능히 양이기도 하다능히 양 극으로 정렬되기도 하고 능히 혼돈이기도 하다

(이같은 사람은. 고금중외古今中外의 위인사偉人史 중에 아주 많다) 사람이 역사歷史일 수 있다

 

鬼谷子謀簫云:聖人之道陰˙愚人之道陽」。又曰:先王之道陰」。

귀곡자鬼谷子의 모소謀簫에 이르기를: 성인聖人의 도는 음이고(숨고) 어리석은 이의 도는 양이다(드러난다)」。또한 가라사대: 선왕先王의 도는 음이다」。

有 道之陽˙.」,有似勸人人算不如天算巧;機心爭似道心屏」。

(左輔) (文昌)

의 양에 있는 것은 좌보.문창이며마치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 인산人算은 천산天算만큼 교묘하지 못하고; 기심機心을 다투는 것은 도심道心을 억제하는 것과 비슷하다」。

(좌보左輔) (문창文昌)

역주)기심機心: 기민하고 교묘한 마음.

좌보와 문창의 성격이 기민하고 교묘함을 다툰다는 말이다(행동이 지나치다).

空 道之陰˙.」,有似勸人留有餘不盡之巧以環造化;(右弼)

留有餘不盡之福以還子孫」。(文曲)

<王留耕>

의 음이 빈 것은 우필.눈곡이며마치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 여지를 남기는 것은 교묘함을 다하지 못함이며이로써 조화造化의 고리가 된다;(우필右弼)

여지를 남기는 것은 복을 다하지 못함이며이로써 자손子孫에게 돌려준다」。(문곡文曲)

<왕류경王留耕>

역주)우필과 문곡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마음이 지나치다).

 

謹呈送于 左輔星

삼가 증정해서 좌보성에게 보낸다.

 

初祖菩提達磨大師安心法門

초조 보리 달마대사 안심법문

 

迷時人逐法解時法逐人解時識攝色迷時色攝識

但有心分別計校自心現量者 悉皆是夢若識心寂滅 無一切念處是明正覺

어리석을 때는 사람이 법(바깥 경계)을 따르고, 깨달을 때는 법이 사람을 따른다. 깨달으면 곧 식이 바깥의 색을 다스리고, 어리석으면 곧 색이 식을 다스린다.

마음으로 분별하고 비교 평가하여, 자기의 몸에 나타나는 대로 헤아리는 것(自身現量 현량)은 모두 다 꿈이다. 만약 마음이 고요함(寂滅)을 깨달아 하나도 움직이는 생각이 없으면, 이것을 일러 올바른 깨달음(正覺)’이라고 한다.

云何自心現量

見一切法有有自不有自心計作有見一切法無無自不無自心計作無乃至一切法亦如是並是自心計作有自心計作無又若人造一切罪自見己之法王卽得解脫

若從事上得解者氣力壯從事中見法者卽處處不失念從文字解者氣力弱卽事卽法者深從汝種種運爲跳踉顚蹶悉不出法界亦不入法界若以法界入法界卽是癡人凡有所施爲終不出法界心何以故心體是法界故

묻는다.

자기 마음에 나타나는 대로 헤아린다(自心現量 자심현량)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답한다.

일체법이 있음()을 본다고 할 때, ()는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마음이 있다고 생각을 짓는 것(計作 계작)이다. 일체법이 없는 것을 볼 때, ()는 스스로 없는 것이 아니다. 자기 마음이 없다고 생각을 짓는 것이다. 나아가 일체법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이 모두 자기 마음이 스스로 있다고 생각을 짓는 것이요, 또한 자기 마음이 스스로 없다고 생각을 짓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일체의 죄를 짓더라도, 스스로 자기의 법왕(法王)을 보면, 곧바로 해탈을 얻는다.”

만약 일 위에서 해탈을 얻은 자라면, 기력이 굳세다. 일 가운데 해탈의 법()을 보는 자는 어느 곳에서도 생각()을 잃지 않는다. 문자를 따라 해탈한 자는 기력이 약하다.

일 그대로 곧 해탈의 법()이 되는 자는 그대가 뛰거나 걷거나 넘어지거나 일어서는 등 가지가지의 움직임에 깊어서, 모두 법계를 벗어나지 않으며, 또한 법계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법계로써 법계에 들어오면, 곧 어리석은 사람이다. 무릇 모든 움직이는 것은 늘 법계의 마음(法界心)을 벗어나지 못한다. 무슨 까닭인가? 마음이 바탕이 되어 바로 법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世間人種種學問云何不得道: 由見己故所以不得道己者我也至人逢若不憂

遇樂不喜由不見己故所以不知苦樂由亡己故得至虛無己尙自亡更有何物而不亡也

묻는다.

세간에서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배우고 묻는데, 어찌하여 도를 얻지 못합니까?”

답한다.

자기를 보는 까닭에 도를 얻지 못한다. 자기라는 것은 곧 나()이다. 도에 이른 사람(至人)은 괴로움을 만나도 근심하지 않으며, 즐거움을 만나도 기뻐하지 않는다. 자기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을 모른다. 자기를 없앤 까닭에 허무를 얻음에 이른다(得至虛無 득지허무). 자기도 오히려 없앴거늘, 다시 어떤 물()이 있어서 없애지 못하겠는가?”

: 說法既空阿誰修道: 有阿誰須修道若無阿誰即不須修道

阿誰者亦我也若無我者逢物不生是非是者我自是而物非是也非者我自非而物非非也即心無心是爲通達佛道即物不起見是名達道逢物直達知其本源此人慧眼開

묻는다.

모든 법이 이미 공한데 누가 도를 닦습니까?”

답한다.

“‘누구(阿誰 아수)’라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도를 닦아야 하겠지만, 누구라는 것이 없다면 굳이 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 ‘누구라는 것 또한 나()이다. 내가 없다면 물()을 만나도 시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옳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옳다고 하는 것이지, ()이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는다. 그르다()고 하는 것은 내가 그르다고 하는 것이지, 물 자체가 그르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대함에 무심하면, 이를 불도에 통달했다(通達佛道)’고 한다. ()을 대함에 시비의 지견을 일으키지 않으면, ‘도에 이르렀다(達道)’고 한다. 물을 만나도 곧바로 도에 이르러 그 근원을 알면, 이 사람은 혜안(慧眼)이 열린 것이다.”

知者任物不任己即無取捨達順不見一物名爲見道不行一物名爲行道即一切處無處即作處無做處無作法即見佛

지혜로운 사람은 물()에 맡기되, 자기에게 맡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취하고 버리거나 거슬리고 따름(取捨違順)이 없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에게 맡기되, 물에게 맡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취하고 버리거나 거슬리고 따름이 있다.

하나의 물()도 보지 않는 것을 도를 본다(見道)’라고 한다. 하나의 물도 행하지 않는 것을 도를 행한다(行道)’라고 한다. 그러므로 일체 어느 곳에 있어도 처소가 없으며, 짓는(보고 행하는) 곳에서 법을 지음이 없으면, 이것이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見佛).

若見相時即一切處見鬼取相故墮地獄觀法故得解脫若見憶想分別即受鑊湯罏炭等事現見生死相若見法界性即涅槃性無憶想分別即是法界性

만약 상()을 본다면 어느 곳에서나 귀신을 본다. 상을 취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까닭이다. 법을 관하면, 그러므로 해탈을 얻는다. 만약 기억한 모습(憶相)을 보고 분별하면, 지옥의 끓는 물이나 뜨거운 화로와 같은 고통을 받아, 현세에서 나고 죽는 모습을 본다. 만약 법계의 성품을 본다면, 곧 열반의 성품이다. 마음의 상()을 기억하고 분별하지 않으면, 곧 법계의 성품이다.

心非色故非有用而不廢故非無又用而常空故非有空而常用故非無

마음은 색이 아닌 까닭에, 있는 것이 아니다. 써도 다하지 않으므로, 또한 없는 것도 아니다. 써도 늘 공()하므로 있는 것도 아니요, 공하지만 늘 쓰는 까닭에 없는 것도 아니다.

 

洪武七年(1374)歲在甲寅春三月丙戌日比丘廟旪焚香稽首拜題

(홍무洪武: 명태조 주원장의 연호)

 

 

공관空觀을 따르는 것은 좌보와 문곡이며, 북두는 탐랑이 머리이고 오행을 순행하며 1이다.

지관止觀을 따르는 것은 우필과 문창이며, 북두는 무곡에서 그치고 오행을 역행하며 6이다.

16을 합하여 현(임계壬癸이고 흑색이며 북방을 가리킨다.....)

역주)파군은 북두와 남두를 연결한다. 파군은 칠적금성七赤金星으로서 붉은 색이므로 화에 속하고 풍수지리에서 중앙에 위치한다.

한국과 일본에 있는 열쇠고리 모양의 전방후원前方後圓분은 사각형과 원형을 합한 모양이며, 원의 수3(3.14.......)이므로 북두칠성을 표시한다. 사각형이 직사각형이 아니라 사다리 모양인 것은 무덤을 만들 시기에 북두칠성이 현재의 큰곰자리가 아닌 작은 곰자리가 하늘의 북극 가까이 있던 까닭이다. 작은 곰자리의 사각형 부분과 북극 사이에는 실재 2개의 별이 보이지만 원형으로 간주한 것인데, 당시에 별이 하나 더 있다가 초신성 폭발이 있었는가는 연구가 필요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북극 3성이 표시되어 있다.

 

참고)9수리數理

一白水星(탐랑)

二黑土星(거문)

三碧木星(녹존)

四綠木星(문곡)

五黃土星(염정)

六白金星(무곡)

八白土星(좌보)

九紫火星(우필)

 

 

탐랑의 1과 무곡의 6은 본래 1.6공종의 이다().

좌보의 83(청색)의 녹존과 합화合化하여야 수가 된다().

역주)3.8은 원래 체로서는 목이다.

로써 그 의의를 취해 그것을 이라 칭한다. 따라서 가라사대: 3은 보해寶海이다.

역주)3은 원래 청색이다. 바닷물이 청색이지만 실재는 이므로 3이라 칭하고 보해寶海라 부르는 것이다.

또한 3은 병이고 8은 신이며 오행에서 병신丙辛은 합수合水이다.

좌보는 두수 성신의 응용상에서

화합물化合物이라 칭하는 근거가 이것에 있다.

(또한 합하여 가 되는 까닭에 마음이 정해지지 않는다).

 

1.탐랑이 영도하는 좌보. 문곡은 공관空觀이다. “을 쓴다(무상無相으로 견성見性). ----- 좌보.

............................................... ()이면, “을 쓴다(무상無相으로 명심明心). ----- 문곡.

2.심경心經은 무상無相 견성見性이다<>

금강경은 무상 명심明心이다<>

------> 모두 반야부般若部에 속한다.

3. 1+6=7. 이것이 생물生物의 본수本數이다.

따라서 좌보 문곡과 우필 문창은 대궁對宮을 드러낸다. <7>로 별을 놓는다.

게다가 사람이 태어나기 전을 가리킨다. 선천괘先天卦를 쓴다.

4.순역順逆을 만일 한꺼번에 운용하려면 먼저 문창의 병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것이 좌보 문곡<>과 문창<>이 한꺼번에 놀이game하는 규칙이다. (거꾸로 가는 길 逆道은 신에서 시작한다----> 文昌忌

역주)

공관空觀: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생긴 것일 뿐 실제는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이치를 관하는 것이다.

무상無相: laksana은 특히 대승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진 개념이다. 흔히 인식 주관이 [허망분별한] 객관 대상의 형상, 특성, 감정 등으로서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는다. 진여라 말한 것도 상이 없으니(無相) 이는 언설의 궁극은 말에 의하여 말을 버리는 것 [因言遣言] 임을 이르는 것이다. 이 진여의 체는 버릴 만한 것이 없으니 일체의 법이 모두 다 참[]이기 때문이며, 또한 주장할 만한 것이 없으니 일체의 법이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성공性空: 모든 사물은 인연의 화합에 의한 것이어서 그 본성은 실재하지 않고 공허하다는 말. 모든 존재의 실상)을 의미한다.

법공法空: 모든 법인 만유萬有는 모두 인연因緣이 모여 생기는 가짜 존재存在로서 실체實體가 없음이라는 말.

명심견성明心見性: 밝은 마음으로 타고난 천성을 안다는 뜻으로 곧 마음을 밝혀 자기 본연의 불성佛性을 보는 것을 가리키는데 불교 수행의 핵심으로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룬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식심견성識心見性으로부터 유래된 말이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사상품四相品

불교경전佛敎經典은 석가모니께서 약 80년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49년간 말씀하신 팔만 사천의 법문을 경전으로 편찬하여 전해져 오며 이 경전의 양이 매우 방대하다고 한다. 그래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 하며 결집 시기와 내용에 따라 분류를 하는데 능엄경楞嚴經 1권 설법 연기說法年記에 보면 석존釋迦世尊께서 각 경전을 말씀하신 시기와 기간이 나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석존께서는 31세에 응화應化하여 화엄과 아함부를 같은 때에 말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석존께서 성도成道 직후부터 설하였다고 알려진 화엄부華嚴部의 경전으로 초전법륜을 포함한 법문을 모아 놓은 경전이 있으며 불교에서는 중요한 경전 군에 속한다.

두 번째는 위의 첫 번째 화엄부의 경전의 내용을 말씀하여도 이해하지 못하므로 쉽게 알려주기 위해 일대一代의 소승小乘에 대하여 방편지교方便之敎라고 하는 방법의 비유를 하여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설해진 아함부阿含部의 경전이 있는데, 석가모니께서는 이 아함부의 경전을 49년간 말씀하셨다고 한다.

세 번째로 아함부의 경전을 점차 이해하는 대중들이 늘어나자 석가모니께서는 그 수준이 높아진 대중들을 위하여 아함부의 12년 후에 중승中乘의 방등부方等部 경전을 말씀하셨으며 그 기간은 8년이라고 한다.

네 번째는 아함 중 20년 후에 불교의 근본 중심 사상이 담겨졌다고 하는 반야부般若部의 경전 군으로 여기에는 금강경金剛經을 포함한 경전들이 있으며 이 반야 사상 역시 오랫동안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경전의 분량도 많아서 600여권에 달한다.

그리고 끝으로 아함 중 41년 후에 일승一乘이라고 하는 법화부法華部의 경전을 말씀하셨고 마지막으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총정리이자 대승大乘의 진수를 열어 보이신 열반부涅般部의 경전이 있는데 이 열반부의 경전을 말씀하시고 입적(入寂)하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