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오법신五蘊五法身(9)-개별식강의 < 二 >①
五蘊五法身 - 個別式講義< 二 >
오온오법신 - 개별식강의 < 二 >
左輔不只是一種現象的存在論,更是存在中的一種實在論。這實在論不一定是屬於你的,是屬於物自身的。好比,藍天與白雲相配得很美,是很實在的,但畢竟他不屬於「我」的,那屬於誰的?屬於「壬」天干所屬的。
좌보가 부족한 것은 일종의 현상적 존재를 논함이며 더욱이 존재 중 일종의 실재를 논함이다. 이 실재론은 반드시 당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이는 물物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다. 마치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서로 배합되면 아주 아름다우며, 이는 아주 실재적이지만 단 필경 그는 「나」에게 속하지 않는데 이는 누구에게 속하는 것인가? 「임壬」천간에 소속되는 것이다.
例:
※左輔在福德˙本具有福的存在論˙但這個存在的實在
(物自身)卻在交友(6外)˙結果是誰得到好處?是屬於朋友的。
복덕에 있는 좌보는 본래 복의 존재를 갖추고 있다고 논하지만 단 이 존재적 실재(물物 자신)는 오히려 교우(6외外)에 있는데, 결과는 누가 좋은 것을 얻는가? 이는 붕우에게 속하는 것이다. 붕우의 복福이다.
例:
※左輔自化科,串連天梁自化科,代表房子是父母的,
因左輔在遷移,(6外)擁有而不屬己有。
(천이궁)좌보자화과는 (전택궁)천량자화과와 천련串連이며, 집이 부모의 것임을 대표하는데, 좌보가 천이에 있기 때문에(6외外) 보유는 하고 있지만 자기가 가진 것이 아니다.
如果說,生命是一種「莊嚴」,莊嚴在人值得被尊重,被讚歎,被懷念……等,這些的種種,都是你自己生命所發出來的光環,(物自身)且是任何人無法以代替的,這就是一種「莊嚴」。而不是外表的「相」。同時,「莊嚴」是一種「自在」,不自在就不是所謂「莊嚴」。
예를 들어 생명은 일종의 「장엄함」이며 사람에게 있는 장엄함은 존중받고 찬탄받고 소중히 간직될 만 하고 이들은 종종 당신 자기생명에서 출발힌 빛의 고리이며, (물物 자신) 게다가 아무나 함부로 대체할 수 없으며 이것이 일종의 「장엄함」이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상相」이 아니다. 동시에 「장엄함」은 일종의 「자재自在」이며 부자재不自在는 이른바 「장엄함」이 아니다.
역주)자재自在: 일상의 삶 그대로가 붓다의 도리에 합일하는 것. 나아가고 물러감에 아무런 장애가 없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걸리고 막힘이 없이 통달 자재하는 것.
例:
左輔在官祿,不管你從事任何行業。「敬職」就是一種「莊嚴」。但如果把敬職代表「責任想」,拼命的求表現,換作成壓力,就不是所謂的莊嚴。是你不尊重左輔,虧待自己的生命的資糧。
좌보가 관록에 있으면 당신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거나 「경직敬職」(직업을 떠받듬)이 일종의 「장엄함」이다. 그러나 만일 경직敬職으로써 「책임감」, 필사적으로 표현을 추구하려는 것을 바꾸어 압력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이른바 장엄함이 아니다. 이는 당신이 좌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자기 생명의 자산과 양식糧食을 푸대접하는 것이다.
※把工作的職內事做得好,就是「美」。「美」在事物本身得「物自身」,如美術家能在他的藝術品上,藝術成美的畫,而不是他要多有責任感,自認為很有「責任想」的人,他的藝術品上少了一點瀟灑,有揮霍的空間。人,也是一樣,正經中帶點傻氣。太「正點」的人,是不能平易近人的,因為藝術的細胞,在正經中找不到的,故在<大乘起信論>有言:「最勝業(左輔)(行蘊)遍知,色無礙自在,救世大悲者」。
직업의 직책 안에서 일을 잘하면 이것이 「미美」이다. 사물 본신에 있는 「미」는 「물物 자신」이 얻으며, 가령 미술가가 그의 예술품 상에서 예술적 미를 이룬 그림이 있어도 그가 대체로 책임감을 많지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가 스스로 아주 「책임감」있는 사람이라 여기면 그의 예술품 상에는 한점 소탈하고 낭비적인 공간이 없다. 마찬가지로 정경正經(행해야 하는 바른 길) 중에는 어느 정도 어수룩함이 따른다. 지나치게 「올바른」 사람은 쉽게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으며, 예술적 세포를 정경正經 중에서 찾을 수 없으며 따라서 〈대승신기론〉에서 말하기를; 「가장 잘하는 일은 (좌보)(행온)에 두루 통하는 지식이고 색色에 장애없이 자재自在하는, 세상을 구하는 큰 자비를 베푸는 자」.
예例:
左輔是行為,有行為就有業,左輔排於「九」 (壬) ,數之極為「最」。勝是一種尊重。色無礙自在,就是對(物自身)盡美而能自在,(如上解),[附會於斗數.文曲.左輔何以同宮?]救世大悲者,自然就現出了「莊嚴」相。而不是做作所得。
좌보는 행위이고 행위가 있으면 업이 있고 좌보가 「九」(임)에 배치되면 수의 극으로서 「최고」이다. 승勝(잘 함)이라는 것은 일종의 존중이다. 색에 장애없이 자재하면 이는 (물 자신)에 대한 미美를 다해서 능히 자재하며(위의 풀이와 같이) [두수에 부회附會하자면 문곡과 좌보는 어떻게 동궁하는가?] 구세대비자救世大悲者는 자연히 「장엄莊嚴」한 상相을 드러낸다. 하지만 지어서 얻은 바는 아니다.
套句俗語,「退一步自有餘地」,是贈于天下「左輔」的眾生。有餘地,就有生氣。就有「再生」的空間。
상투적인 속담에 따르면, 「한 발짝 물러서면 스스로 여지가 있다」는 것은 천하에 「좌보」라는 중생에게 주는 것이다. 여지가 있으면 생기生氣가 있게 되며 「재생再生」하는 공간이 있게 된다.